조각가의 눈으로 본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 기념관
팬데믹으로 우리가 모든 활동을 자제하고 있던 지난 2020년 11월 11일, 국립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 기념관 (National Native American Veterans Memorial)이 워싱턴 디시에 건립되었다. 디시에서 가장 최근 건립된 이 기념관은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방문한 그곳은 나무로 둘러싸이고 작은 연못을 끼고 위치하여 번잡한 도시에서 한적한 휴식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미국에서 인종 간의 갈등의 여러 사회문제가 요란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때, 이 조용한 기념관은 미국인이라는 의미를 잠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공간이 나에게 되기도 하였다.
나는 종종 미국의 다양성에 관한 나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이면에는 나 자신이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자임으로부터 출발하여, 수많은 이민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화합을 원하는 나의 고귀한(?) 희망을 반영하고 있었기에 이를 말함에 주저함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나의 미국에 대한 이해의 치명적 오류를 발견하였다. “미국은 미국 원주민과 이민자의 나라이다.”로 내 생각을 다시 전환하고, 조용하지만 누구보다도 그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미국의 원주인을 기념하는 이 기념관을 존경의 마음을 담아 둘러본다.
국립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 기념관은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를 기념하고 그들의 가족의 희생을 인식하고 기념관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축복받고 치유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기념관은 2018년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하비 프렛( Harvey Pratt)의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하비 프렛은 미군 해병으로 그 자신이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고 미국 원주민으로 오클라호마의 샤이엔과 아라파호 부족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기념관이 설립된 위치를 찾던 중 한 마리의 매가 갑자기 공중에 나타나 기념관의 부지가 될 장소에 위치한 나무에 오랜 기간 머물렀다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범상치 않은 징조로 보고 조상의 계시로 받아들여 장소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 그의 증조할아버지의 인디언 이름은 “빨간 꼬리 매( Red Tail Hawk)” 로 그는 매의 등장은 조상들이 이 프로젝트를 축복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장소 선정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 기념관은 미국 원주민들의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디자인되었다. 나무와 물로 둘러싸여 있는 기념관은 그 입구에서 “생명의 길( Path of life)”이라는 구불한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데 물가쪽으로 위치한 녹슨듯한 난간이 인상적이다. 건립이 일 년이 채 안 된 기념관임을 고려할때 난간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산화되고 있는 금속을 통하여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게 한다. 기념관의 중심은 돌로 만들어진 원통형의 북( Drum) 위에 12피트의 스텐레스 원형의 구조물이 직각으로 설치되어 있다. 원통형의 석재 북의 둘레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중앙으로부터 물이 나와서 넘쳐흐르며 순환되게 되어 있다. 그 위에 있는 커다란 원형의 구조물의 안쪽 아래는 특별한 행사 때 불이 지펴져 나오는 구조이다. 이 원형에 대하여 프렛은 이 모양은 달, 태양과 같은 자연을 상징하고 생명과 계절의 순환을 상징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이 원형의 빈공간은 하늘로 이어지는 통로라고도 이야기하는데 물, 불, 대지, 공기와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모두 그의 디자인에 녹아 있다.
이 수직 원형의 구조를 둘러싸고 또 다른 원형의 공간이 있다. 돌로 만들어진 둘러싸진 벽이 그것인데 이 안쪽은 앉을 수 있는 의자의 형태이고 바깥쪽에는 구조물을 돌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 벽의 네 방향에는 커다란 창과 같은 막대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기도의 봉 (Prayer Pole)으로 그 끝은 깃털의 모양으로 주조되어 장식되어 있고 각기 흰색,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의 천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기도의 봉은 방문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방문자는 기도를 긴 천에 적어 각 기도의 봉에 매달고 원주민들은 이 기도의 끈이 바람을 통해 날리며 그 소원이 하늘에 전달된다고 믿는다. 또한 기념물 구조를 감싸고 있는 나무의 숲에서는 원주민 여러 부족의 녹음된 노래가 연주되는데 이 소리는 마치 주문을 반복하여 외우는 듯하여 제사와 같은 의식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상당히 영적인 체험이 가능한 이 공간은 마치 한국의 무속신앙이 담긴 장소인 서낭당이나 솟대 그리고 굿과 같은 의식을 연상케 한다. 동네입구에 커다란 나무에 길흉과 명복을 기원하며 색색이 달린 오색의 끈과 하늘과 이 세상을 잇는 매개체로써 오리와 같은 새의 형상을 긴 막대기 끝에 장식한 솟대와도 모양과 역할에 있어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거창한 전통적인 해석 이외에도 이 기념관의 모습은 우리에게 단순히 자연 속에 캠핑하며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옹기종기 돌아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함께 나누는 온기속에서 우리 모두는 그간의 피로를 녹이고 서로 가까워지며 회복하지 않았던가? ‘나는 꿈꾸는 자’라고 이야기하는 아티스트 프렛은 ‘우리는 모두 다르나 또 같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나는 여기서 원주민들과 함께 꿈꾸는 자가 되어, 세상의 이런저런 작은 전쟁에서 상처받은 각기 다른 우리가 이 회복의 공간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우리의 바램을 하늘로 날리는 것을 꿈꿔 본다.
팬데믹으로 우리가 모든 활동을 자제하고 있던 지난 2020년 11월 11일, 국립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 기념관 (National Native American Veterans Memorial)이 워싱턴 디시에 건립되었다. 디시에서 가장 최근 건립된 이 기념관은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방문한 그곳은 나무로 둘러싸이고 작은 연못을 끼고 위치하여 번잡한 도시에서 한적한 휴식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미국에서 인종 간의 갈등의 여러 사회문제가 요란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때, 이 조용한 기념관은 미국인이라는 의미를 잠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공간이 나에게 되기도 하였다.
나는 종종 미국의 다양성에 관한 나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이면에는 나 자신이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자임으로부터 출발하여, 수많은 이민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화합을 원하는 나의 고귀한(?) 희망을 반영하고 있었기에 이를 말함에 주저함이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나의 미국에 대한 이해의 치명적 오류를 발견하였다. “미국은 미국 원주민과 이민자의 나라이다.”로 내 생각을 다시 전환하고, 조용하지만 누구보다도 그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미국의 원주인을 기념하는 이 기념관을 존경의 마음을 담아 둘러본다.
국립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 기념관은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를 기념하고 그들의 가족의 희생을 인식하고 기념관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축복받고 치유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기념관은 2018년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하비 프렛( Harvey Pratt)의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하비 프렛은 미군 해병으로 그 자신이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고 미국 원주민으로 오클라호마의 샤이엔과 아라파호 부족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기념관이 설립된 위치를 찾던 중 한 마리의 매가 갑자기 공중에 나타나 기념관의 부지가 될 장소에 위치한 나무에 오랜 기간 머물렀다고 이야기하고 그것을 범상치 않은 징조로 보고 조상의 계시로 받아들여 장소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 그의 증조할아버지의 인디언 이름은 “빨간 꼬리 매( Red Tail Hawk)” 로 그는 매의 등장은 조상들이 이 프로젝트를 축복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장소 선정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 기념관은 미국 원주민들의 토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디자인되었다. 나무와 물로 둘러싸여 있는 기념관은 그 입구에서 “생명의 길( Path of life)”이라는 구불한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데 물가쪽으로 위치한 녹슨듯한 난간이 인상적이다. 건립이 일 년이 채 안 된 기념관임을 고려할때 난간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산화되고 있는 금속을 통하여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게 한다. 기념관의 중심은 돌로 만들어진 원통형의 북( Drum) 위에 12피트의 스텐레스 원형의 구조물이 직각으로 설치되어 있다. 원통형의 석재 북의 둘레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중앙으로부터 물이 나와서 넘쳐흐르며 순환되게 되어 있다. 그 위에 있는 커다란 원형의 구조물의 안쪽 아래는 특별한 행사 때 불이 지펴져 나오는 구조이다. 이 원형에 대하여 프렛은 이 모양은 달, 태양과 같은 자연을 상징하고 생명과 계절의 순환을 상징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이 원형의 빈공간은 하늘로 이어지는 통로라고도 이야기하는데 물, 불, 대지, 공기와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모두 그의 디자인에 녹아 있다.
이 수직 원형의 구조를 둘러싸고 또 다른 원형의 공간이 있다. 돌로 만들어진 둘러싸진 벽이 그것인데 이 안쪽은 앉을 수 있는 의자의 형태이고 바깥쪽에는 구조물을 돌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 벽의 네 방향에는 커다란 창과 같은 막대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기도의 봉 (Prayer Pole)으로 그 끝은 깃털의 모양으로 주조되어 장식되어 있고 각기 흰색,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의 천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기도의 봉은 방문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방문자는 기도를 긴 천에 적어 각 기도의 봉에 매달고 원주민들은 이 기도의 끈이 바람을 통해 날리며 그 소원이 하늘에 전달된다고 믿는다. 또한 기념물 구조를 감싸고 있는 나무의 숲에서는 원주민 여러 부족의 녹음된 노래가 연주되는데 이 소리는 마치 주문을 반복하여 외우는 듯하여 제사와 같은 의식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상당히 영적인 체험이 가능한 이 공간은 마치 한국의 무속신앙이 담긴 장소인 서낭당이나 솟대 그리고 굿과 같은 의식을 연상케 한다. 동네입구에 커다란 나무에 길흉과 명복을 기원하며 색색이 달린 오색의 끈과 하늘과 이 세상을 잇는 매개체로써 오리와 같은 새의 형상을 긴 막대기 끝에 장식한 솟대와도 모양과 역할에 있어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거창한 전통적인 해석 이외에도 이 기념관의 모습은 우리에게 단순히 자연 속에 캠핑하며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옹기종기 돌아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함께 나누는 온기속에서 우리 모두는 그간의 피로를 녹이고 서로 가까워지며 회복하지 않았던가? ‘나는 꿈꾸는 자’라고 이야기하는 아티스트 프렛은 ‘우리는 모두 다르나 또 같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나는 여기서 원주민들과 함께 꿈꾸는 자가 되어, 세상의 이런저런 작은 전쟁에서 상처받은 각기 다른 우리가 이 회복의 공간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우리의 바램을 하늘로 날리는 것을 꿈꿔 본다.
조각가의 눈으로 본 사라진 기념비 조각들
키힌데 와일리 (Kehinde Wiley)의 새로운 기념비적 조각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를 직접 보기 위해 방문한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에서 나는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였다. 차를 세울 수도 없는 교차로 중앙에 좌대만이 덩그러니 남은 기념비를 운전 중 만난 것이다. 그것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연합의 장군이었던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 기념비의 일부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인권운동의 여파로 이에 반하는 많은 기념비적 조각들이 그 자리에서 철거되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인권 유린의 사건으로 성난 군중에 의해 특정 기념비적 조각은 훼손되고 끌려 내려오는 순간을 담은 많은 뉴스 보도를 보았기에 사실 좌대만이 남은 기념비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실물을 대하는 것은 꽤 충격적이고 조금 과장을 한다면 알 수 없는 전율(?)이 이는 일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느낌은 마치 갤러리 저 구석에 샘이란 제목으로 의도적으로 거꾸로 놓인 뒤샹의 변기를 만난 관람객이 느꼈을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을까?
토마스 조나단 잭슨( Thomas Jonathon Jackson)은 1861년 7월 남북전쟁 당시 리치먼드까지 진격한 북부연합의 공격에 맞서 승리한 후 ‘돌로 만든 벽 (Stonewall)’ 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남부연합의 용장이다. 그의 기념비는 1919년 화강암 좌대 위에 말을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브론즈로 제작하였는데 로버트 리, 제임스 이웰 브라운 스튜어트, 제퍼슨 데이비스 등의 다른 남부연합 영웅들의 기념비가 있는 모뉴먼트 에비뉴에 세워진다. 2020년 인종차별 시위가 확산하면서 그의 조각은 시에 의해 해체되고 철거되는데 현재 그곳에는 스톤월 잭슨을 떠받치고 있던 좌대만이 남아있다.
조각가로 난 이 남겨진 좌대에 주목하고 싶다. 현대 조각의 역사에서 조각은 더이상 좌대위에 위치하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오기도 하며 좌대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조각이 되는 사고의 전환이 있었다. 우리는 일상의 레디메이드 오브제인 변기가 뒤집어져 갤러리에 “샘(Fountain)”이란 제목으로 전시됨으로 더럽고 일상적인 도구에서 귀하고 주인공이되는 예술로 전복되는 가치의 전환을 만들며 현대미술의 큰 전환점이 된 뒤샹의 작업을 알고 있다. 스톤월 잭슨 기념비의 좌대가 이러한 뒤샹의 샘 작업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것이 최근 기념비적 조각의 철거에 관한 찬반 논쟁의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을 다시 한번 ‘정의, 자유, 인권’ 등의 잣대로 평가한 후 그들의 역사적 위치를 재고해 봐야 한다는데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기념비적 조각은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가치 기준의 문제를 담고 있는 부분이기에 계속되는 화두가 되고 있고 이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중 특정 기념비적 조각의 철거 문제가 대두되며 찬반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철거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교훈으로 삼는 도구로 유지할 것인가? 수많은 프로테스터들의 폭력적인 기념비 조각 훼손 영상을 본 나는 처음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역사의 교훈이 되는 한 부분으로 남겨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한 흑인 여성의 울부짖는 인터뷰를 보며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노예제를 옹호한 인종차별주의자의 기념비 아래를 매일 지나는 것이 얼마나 그녀와 가족에게 가슴 아픈일인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예를 들어 그들의 입장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에게 저 기념비는 유대인 커뮤니티에 나치의 심볼을 세워놓는 것과 같다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고통받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이 기념물들이 역사의 교훈이 되는 부분으로 남겨야 한다면 누구에게 교훈이 된다는 것인가? 여기서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그 피해와 희생의 그룹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삼자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옳지 않은 과거를 담은 기념비적 조각들은 철거되어야 한다. 그것이 조형 언어의 문제이건(예를 들자면, 워싱턴 디시 해방 기념관에 링컨 대통령 기념 조각, 뉴욕 자연사 박물관앞의 T.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마 조각 등), 인물 자체의 문제이건간에 이러한 기념 조각은 더는 역사 속 공공 기념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치워지고 지워지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이 부분의 답을 여전히 찾고 있지만,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에서 적어도 두 개의 답을 찾은 것 같다. 그 하나는 새로운 역사에 맞는 새로운 기념물 조각을 만드는 것이다. 키힌데 와일리 (Kehinde Wiley) 의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가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치워진 역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스톤월 잭슨의 남겨진 좌대는 이제는 더이상 보조적 역할이 아닌 지난 프로테스터들의 스프레이 페인트로 남긴 역사의 흔적을 옅게 몸에 지닌 채 (뒤샹의 소변기의 작가의 사인과 같이 ) 그 자체로 기념비 조각이 되었고 그 위의 비워진 공간은 그 어떤 새로운 조형물보다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로서 인권 문제의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적 지원을 하는 남부 빈곤 법률센터 (Southern Poverty Law Center)는 통계자료에서 2020년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지금까지 미 전역에 걸쳐 인종차별과 인권유린 문제와 관련된 공공기념물이 100개 이상이 제거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공공기념물은 정부 건물, 기념비 및 동상, 명판, 학교, 공원, 카운티, 도시, 군사 자산, 거리 및 고속도로 등 생각보다 광범위한데 기념비와 기념 조각이 물론 많은 수를 차지한다. 오늘 방문한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모뉴먼트 에비뉴에도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제임스 이웰 브라운 스튜어트, 윗글의 스토월 잭슨의 인물상을 포함하여 남부연합군의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 데이비스와 유명한 해양학자이자 남부연합의 또 다른 영웅이었던 매튜 폰테인 머리 등의 인물상이 2020년 철거되었다. 그들은 사라졌으나 비워진 흔적을 담은 남겨진 기념물들은 역사의 평가를 담은 새로운 기념 조각이 되어 각각의 위치에서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키힌데 와일리 (Kehinde Wiley)의 새로운 기념비적 조각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를 직접 보기 위해 방문한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에서 나는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하였다. 차를 세울 수도 없는 교차로 중앙에 좌대만이 덩그러니 남은 기념비를 운전 중 만난 것이다. 그것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남부연합의 장군이었던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 기념비의 일부였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인권운동의 여파로 이에 반하는 많은 기념비적 조각들이 그 자리에서 철거되었다는 것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인권 유린의 사건으로 성난 군중에 의해 특정 기념비적 조각은 훼손되고 끌려 내려오는 순간을 담은 많은 뉴스 보도를 보았기에 사실 좌대만이 남은 기념비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실물을 대하는 것은 꽤 충격적이고 조금 과장을 한다면 알 수 없는 전율(?)이 이는 일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느낌은 마치 갤러리 저 구석에 샘이란 제목으로 의도적으로 거꾸로 놓인 뒤샹의 변기를 만난 관람객이 느꼈을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을까?
토마스 조나단 잭슨( Thomas Jonathon Jackson)은 1861년 7월 남북전쟁 당시 리치먼드까지 진격한 북부연합의 공격에 맞서 승리한 후 ‘돌로 만든 벽 (Stonewall)’ 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남부연합의 용장이다. 그의 기념비는 1919년 화강암 좌대 위에 말을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브론즈로 제작하였는데 로버트 리, 제임스 이웰 브라운 스튜어트, 제퍼슨 데이비스 등의 다른 남부연합 영웅들의 기념비가 있는 모뉴먼트 에비뉴에 세워진다. 2020년 인종차별 시위가 확산하면서 그의 조각은 시에 의해 해체되고 철거되는데 현재 그곳에는 스톤월 잭슨을 떠받치고 있던 좌대만이 남아있다.
조각가로 난 이 남겨진 좌대에 주목하고 싶다. 현대 조각의 역사에서 조각은 더이상 좌대위에 위치하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오기도 하며 좌대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조각이 되는 사고의 전환이 있었다. 우리는 일상의 레디메이드 오브제인 변기가 뒤집어져 갤러리에 “샘(Fountain)”이란 제목으로 전시됨으로 더럽고 일상적인 도구에서 귀하고 주인공이되는 예술로 전복되는 가치의 전환을 만들며 현대미술의 큰 전환점이 된 뒤샹의 작업을 알고 있다. 스톤월 잭슨 기념비의 좌대가 이러한 뒤샹의 샘 작업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것이 최근 기념비적 조각의 철거에 관한 찬반 논쟁의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을 다시 한번 ‘정의, 자유, 인권’ 등의 잣대로 평가한 후 그들의 역사적 위치를 재고해 봐야 한다는데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기념비적 조각은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가치 기준의 문제를 담고 있는 부분이기에 계속되는 화두가 되고 있고 이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중 특정 기념비적 조각의 철거 문제가 대두되며 찬반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철거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교훈으로 삼는 도구로 유지할 것인가? 수많은 프로테스터들의 폭력적인 기념비 조각 훼손 영상을 본 나는 처음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역사의 교훈이 되는 한 부분으로 남겨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한 흑인 여성의 울부짖는 인터뷰를 보며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노예제를 옹호한 인종차별주의자의 기념비 아래를 매일 지나는 것이 얼마나 그녀와 가족에게 가슴 아픈일인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예를 들어 그들의 입장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에게 저 기념비는 유대인 커뮤니티에 나치의 심볼을 세워놓는 것과 같다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고통받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이 기념물들이 역사의 교훈이 되는 부분으로 남겨야 한다면 누구에게 교훈이 된다는 것인가? 여기서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그 피해와 희생의 그룹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삼자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옳지 않은 과거를 담은 기념비적 조각들은 철거되어야 한다. 그것이 조형 언어의 문제이건(예를 들자면, 워싱턴 디시 해방 기념관에 링컨 대통령 기념 조각, 뉴욕 자연사 박물관앞의 T. 루스벨트 대통령의 기마 조각 등), 인물 자체의 문제이건간에 이러한 기념 조각은 더는 역사 속 공공 기념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치워지고 지워지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이 부분의 답을 여전히 찾고 있지만,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에서 적어도 두 개의 답을 찾은 것 같다. 그 하나는 새로운 역사에 맞는 새로운 기념물 조각을 만드는 것이다. 키힌데 와일리 (Kehinde Wiley) 의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가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치워진 역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스톤월 잭슨의 남겨진 좌대는 이제는 더이상 보조적 역할이 아닌 지난 프로테스터들의 스프레이 페인트로 남긴 역사의 흔적을 옅게 몸에 지닌 채 (뒤샹의 소변기의 작가의 사인과 같이 ) 그 자체로 기념비 조각이 되었고 그 위의 비워진 공간은 그 어떤 새로운 조형물보다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로서 인권 문제의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적 지원을 하는 남부 빈곤 법률센터 (Southern Poverty Law Center)는 통계자료에서 2020년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지금까지 미 전역에 걸쳐 인종차별과 인권유린 문제와 관련된 공공기념물이 100개 이상이 제거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공공기념물은 정부 건물, 기념비 및 동상, 명판, 학교, 공원, 카운티, 도시, 군사 자산, 거리 및 고속도로 등 생각보다 광범위한데 기념비와 기념 조각이 물론 많은 수를 차지한다. 오늘 방문한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모뉴먼트 에비뉴에도 지난 글에서 언급한 제임스 이웰 브라운 스튜어트, 윗글의 스토월 잭슨의 인물상을 포함하여 남부연합군의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 데이비스와 유명한 해양학자이자 남부연합의 또 다른 영웅이었던 매튜 폰테인 머리 등의 인물상이 2020년 철거되었다. 그들은 사라졌으나 비워진 흔적을 담은 남겨진 기념물들은 역사의 평가를 담은 새로운 기념 조각이 되어 각각의 위치에서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각가의 눈으로 본 새로운 기념비적 조각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
버지니아 미술관 ( Virginia Museum of Fine Art) 앞에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념비적 조각이 세워졌다.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라는 제목의 이 조각은 미국출신의 아티스트인 키힌데 와일리 (Kehinde Wiley, 1977-)에 의해 2019년 제작된 것으로 버지니아 미술관 역사상 가장 큰 커미션이 주어진 작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로 잘 알려진 키힌데 와일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그의 작업은 그와 같은 젊은 흑인 남성을 주로 모델로 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사 속의 작품들의 장면, 특히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역사 속 인물의 초상화 속 포즈를 젊은 흑인 남성들로 모방하게 한 후 이를 사진 찍거나 유화로 그려낸다. 이 인물들은 여러 문화권의 고전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프레임과 배경으로 의도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양식과 현대적 인물의 묘한 조화가 그만의 독특한 언어를 만들어낸다.
“전쟁의 루머”를 실제로 보기 위해 방문한 버지니아 미술관에도 이러한 그의 회화작업 한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1625년 네덜란드 할렘 출신의 옷감상인이었던 윌렘 반 헤이투이슨(Willem Van Heythuysen)의 초상을 2006년 뉴욕 할렘의 한 흑인 젊은 청년의 초상으로 대체하여 그려진 작업이다. 이 작업 속의 인물은 원 초상화의 인물의 포즈와 태도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고 실물보다 큰 크기로 제작되었다. 전통 초상화들에 많이 사용되는 두꺼운 금색 프레임과 화려하고 장식적인 꽃 패턴의 배경과는 달리 그 안의 인물은 2006년 당시 뉴욕의 유행 아이템인 션존(Sean John) 스트리트웨어와 팀버랜드(Timber Land)부츠를 신고 있는데 이와 같은 어쩌면 어색하고 기대하지 않은 조합은 와일리의 조각에서도 그대로 찾을 수 있었다.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 조각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기념비적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견고한 대리석으로 된 좌대위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물이 브론즈로 주조된 것은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 기념비 조각의 표현양식이다. 와일리의27피트( 8.2m) 높이에 16 피트(4.9m) 길이의 이 거대한 조각에서도 이 양식은 의도적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익숙한 사다리꼴의 석 좌대가 있고 그 위에는 거의 검정의 가까운 어두운색의 브론즈로 주조된 인물의 모습이 있다. 이 인물은 근육질의 말을 타고 마치 전쟁 중 선두에 서서 목표를 향하고 있는 듯한 영웅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본 인물은 우리가 기대한 그런 전쟁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이 조각 속의 인물은 마치 뉴욕의 브루클린이나 할렘 거리를 지나며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젊은 흑인 친구의 모습이다. 안장 위에 인물은 그의 헤리티지를 잘 나타내는 드레드록스(Dreadlocks) 일명 레게 헤어스타일의 머리를 묶고 있고 우리 옷장에 적어도 하나는 있을듯한 무릎이 찢어진 진을 입고 있으며 한참 동안 많이들 갖고 싶어했던 발목이 올라온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나의 친구이다.
와일리는 이 조각에 관하여 2016년 본인의 전시로 방문한 리치먼드에서 보게 된 남부 연합의 기념비적 조각들이 이 작품 시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버지니아의 리치먼드는 남부 연합 국가의 수도로 지금도 모뉴먼트 에비뉴에는 당시 노예제를 지지하였던 남부 연합 영웅들의 기념 조각들이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와일리가 이러한 기념 조각들을 지나면서 느꼈을 감정은 우리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와일리는 수많은 기념 조각 중 남부 연합군 장군인 제임스 이웰 브라운( J. E. B.)의 동상을 “전쟁의 루머” 조각의 모델로 삼았다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두 조각은 인물을 제외하고는 매우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의 제목을 성경의 마태복음 24장 6절에서 예수가 재난의 때를 설명하는 구절에서 “전쟁의 루머”라는 단어를 인용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심판의 때를 앞에 두고 혼란과 재난 속에 이를 리드하는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역사적 기념비들이 보여주고 있던 인종과 가치의 편협한 해석의 문제 전복을 위한 전쟁을 기념하는 것인지 제목과 작품을 보며 나는 나름의 해석을 해 보려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2019년 9월 27일 이 조각은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마치 새로운 기념비적 조각 역사의 시작을 알리듯 그 첫선을 보인다. 몇 주의 전시 후 2019년 12월 10일 “전쟁의 루머” 는 와일리가 그 작업의 영감을 받은 곳이기도 하며, 또한 역사적인 면에서 새로운 기념비의 장소적 의미가 있게 될 버지니아의 리치먼드로 옮겨져 영구 설치되었다. 나는 2021년 1월 이 조각을 실제로 보기 위해 리치먼드를 방문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는 이제는 “전쟁의 루머” 제작의 원 본격인 기념 조각 제임스 이웰 브라운( J. E. B.) 동상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 이후 일어난 흑인 인권운동의 여파로 2020년 7월 모뉴먼트 에비뉴의 몇몇 동상들은 리치먼드 시에 의해 치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기념비적 조각의 역사가 새로 쓰이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다음 호에 “사라진 기념비적 조각들”로 이어집니다.
버지니아 미술관 ( Virginia Museum of Fine Art) 앞에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념비적 조각이 세워졌다.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라는 제목의 이 조각은 미국출신의 아티스트인 키힌데 와일리 (Kehinde Wiley, 1977-)에 의해 2019년 제작된 것으로 버지니아 미술관 역사상 가장 큰 커미션이 주어진 작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로 잘 알려진 키힌데 와일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그의 작업은 그와 같은 젊은 흑인 남성을 주로 모델로 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사 속의 작품들의 장면, 특히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역사 속 인물의 초상화 속 포즈를 젊은 흑인 남성들로 모방하게 한 후 이를 사진 찍거나 유화로 그려낸다. 이 인물들은 여러 문화권의 고전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프레임과 배경으로 의도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양식과 현대적 인물의 묘한 조화가 그만의 독특한 언어를 만들어낸다.
“전쟁의 루머”를 실제로 보기 위해 방문한 버지니아 미술관에도 이러한 그의 회화작업 한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1625년 네덜란드 할렘 출신의 옷감상인이었던 윌렘 반 헤이투이슨(Willem Van Heythuysen)의 초상을 2006년 뉴욕 할렘의 한 흑인 젊은 청년의 초상으로 대체하여 그려진 작업이다. 이 작업 속의 인물은 원 초상화의 인물의 포즈와 태도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고 실물보다 큰 크기로 제작되었다. 전통 초상화들에 많이 사용되는 두꺼운 금색 프레임과 화려하고 장식적인 꽃 패턴의 배경과는 달리 그 안의 인물은 2006년 당시 뉴욕의 유행 아이템인 션존(Sean John) 스트리트웨어와 팀버랜드(Timber Land)부츠를 신고 있는데 이와 같은 어쩌면 어색하고 기대하지 않은 조합은 와일리의 조각에서도 그대로 찾을 수 있었다.
“전쟁의 루머 (Rumors of war)” 조각은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기념비적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견고한 대리석으로 된 좌대위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물이 브론즈로 주조된 것은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 기념비 조각의 표현양식이다. 와일리의27피트( 8.2m) 높이에 16 피트(4.9m) 길이의 이 거대한 조각에서도 이 양식은 의도적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익숙한 사다리꼴의 석 좌대가 있고 그 위에는 거의 검정의 가까운 어두운색의 브론즈로 주조된 인물의 모습이 있다. 이 인물은 근육질의 말을 타고 마치 전쟁 중 선두에 서서 목표를 향하고 있는 듯한 영웅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본 인물은 우리가 기대한 그런 전쟁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이 조각 속의 인물은 마치 뉴욕의 브루클린이나 할렘 거리를 지나며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젊은 흑인 친구의 모습이다. 안장 위에 인물은 그의 헤리티지를 잘 나타내는 드레드록스(Dreadlocks) 일명 레게 헤어스타일의 머리를 묶고 있고 우리 옷장에 적어도 하나는 있을듯한 무릎이 찢어진 진을 입고 있으며 한참 동안 많이들 갖고 싶어했던 발목이 올라온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나의 친구이다.
와일리는 이 조각에 관하여 2016년 본인의 전시로 방문한 리치먼드에서 보게 된 남부 연합의 기념비적 조각들이 이 작품 시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버지니아의 리치먼드는 남부 연합 국가의 수도로 지금도 모뉴먼트 에비뉴에는 당시 노예제를 지지하였던 남부 연합 영웅들의 기념 조각들이 있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와일리가 이러한 기념 조각들을 지나면서 느꼈을 감정은 우리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와일리는 수많은 기념 조각 중 남부 연합군 장군인 제임스 이웰 브라운( J. E. B.)의 동상을 “전쟁의 루머” 조각의 모델로 삼았다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두 조각은 인물을 제외하고는 매우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작업의 제목을 성경의 마태복음 24장 6절에서 예수가 재난의 때를 설명하는 구절에서 “전쟁의 루머”라는 단어를 인용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심판의 때를 앞에 두고 혼란과 재난 속에 이를 리드하는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표현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역사적 기념비들이 보여주고 있던 인종과 가치의 편협한 해석의 문제 전복을 위한 전쟁을 기념하는 것인지 제목과 작품을 보며 나는 나름의 해석을 해 보려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2019년 9월 27일 이 조각은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마치 새로운 기념비적 조각 역사의 시작을 알리듯 그 첫선을 보인다. 몇 주의 전시 후 2019년 12월 10일 “전쟁의 루머” 는 와일리가 그 작업의 영감을 받은 곳이기도 하며, 또한 역사적인 면에서 새로운 기념비의 장소적 의미가 있게 될 버지니아의 리치먼드로 옮겨져 영구 설치되었다. 나는 2021년 1월 이 조각을 실제로 보기 위해 리치먼드를 방문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는 이제는 “전쟁의 루머” 제작의 원 본격인 기념 조각 제임스 이웰 브라운( J. E. B.) 동상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 이후 일어난 흑인 인권운동의 여파로 2020년 7월 모뉴먼트 에비뉴의 몇몇 동상들은 리치먼드 시에 의해 치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기념비적 조각의 역사가 새로 쓰이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다음 호에 “사라진 기념비적 조각들”로 이어집니다.